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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 Jobs' speech at Stanford University in 2005 스티브 잡스 스탠포드 연설문 전문 2

by Jade S. 2024.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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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UF8uR6Z6KLc?si=6Sk_MVlbRRHguSPo

Source : https://youtube.com/@stanford?si=jEdoI4YcTVzNbuR5
감사합니다오늘 여러분과 함께 이 훌륭한 대학에서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에 영광입니다. Thank you. I'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for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사실을 말하자면,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고, 이것이 나에게 대학 졸업에 가까운 경험 중 가장 가까운 것입니다. Truth be to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오늘은 내 삶에서 세 가지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그게 전부야. 큰 일은 아니야. 세 가지 이야기 뿐이야.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첫 번째 이야기는 점을 이어가는 것에 관한 이야기야.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리드 대학에서 처음 6개월만에 중퇴했지만, 그 후로는 약 18개월 정도 동안 자주 들러 다녔어요. 정말 그만두기 전까지 말이에요.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six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eighteen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그럼 왜 중퇴했냐고요? 그 이유는 제가 태어나기 전에 시작됐어요. So why did I drop out?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제 생물학적 어머니는 젊은 미혼 대학 졸업생이었고, 그녀는 나를 입양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그녀는 나를 대학 졸업자 부부에게 입양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느꼈기 때문에, 나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부부에 의해 입양되기로 모든 게 준비되었습니다.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하지만 내가 나온 순간에 그들은 마지막 순간에 정말로 여자 아이를 원했다고 결정했어요.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그래서 나의 부모님들은 대기 목록에 있던 중에 밤중에 전화를 받았죠. 무슨 이유에서인지 묻는 전화였습니다: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남아 아이가 생겼는데, 그를 원하시나요?"
그들은 "물론이죠"라고 대답했습니다.
"We've got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나의 생물학적 어머니는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나의 어머니는 대학을 졸업한 적이 없었고, 나의 아버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My biological mother found out later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그녀는 최종 입양 서류에 서명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나의 부모님이 나가 대학에 다닐 것을 약속한 후에야 그녀는 몇 달을 거부하다가 마침내 입양 서류에 서명했습니다.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go to college.
이것이 나의 삶의 시작이었습니다. This was the start in my life.
그리고 17년 후에 나는 대학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And seventeen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하지만 나는 순진하게도 스탠포드와 거의 비슷한 비용의 대학을 선택했고, 노동 계급 출신의 부모님들의 모든 저축은 내 대학 등록금에 쓰이고 있었습니다.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6개월이 지난 뒤, 나는 그 가치를 보지 못했습니다.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내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전혀 모르고, 대학이 어떻게 나를 그것을 깨닫게 도와줄지도 몰랐습니다.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모은 부모님의 모든 돈을 쓰고 있었습니다.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그래서 나는 중퇴하기로 결정하고,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 믿었습니다.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당시에는 꽤 무서웠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내린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습니다.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중퇴한 순간, 나는 내게 흥미 없는 필수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되었고, 훨씬 더 흥미로운 것들을 듣기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far more interesting.
모든 것이 로맨틱한 것만은 아니었어. 나는 기숙사 방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의 방에서 바닥에 잤어.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나는 음료병을 5센트 보증금에 반납해서 음식을 사 먹었고, 매주 일요일 밤에는 도시를 가로질러 7마일을 걸어가서 Hare Krishna 사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의 좋은 식사를 했어. 나는 그걸 정말로 좋아했어.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cents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seven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내 호기심과 직감을 따라서 우연히 발견한 많은 일들은 나중에는 매우 귀중한 것으로 나타났다.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당시 리드 대학에서는 아마도 나라에서 최고의 서예 교육을 제공했습니다. Let me give you one example: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캠퍼스 곳곳에 있는 모든 포스터, 모든 서랍 라벨은 아름답게 손글씨로 쓰여 있었습니다. Throughout the campus, and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calligraphed.
내가 중퇴해서 보통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이걸 배우기 위해 서예 수업을 듣기로 결정했다.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나는 산세리프(Serif)와 산세리프(Sans Serif) 서체에 대해 배우고, 서로 다른 글자 조합 사이의 간격을 조절하는 방법에 대해 알게 되었으며, 훌륭한 타이포그래피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에 대해 배웠습니다.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s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nd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그것은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과학이 포착할 수 없는 예술적 섬세함이 있었고, 나는 그것이 매우 매력적이라고 느꼈습니다.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nd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이 중 어떤 것도 내 삶에서 실용적으로 적용될 희망이 없었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하지만 10년 뒤, 우리가 최초의 맥킨토시 컴퓨터를 디자인할 때, 모든 것이 내게 다시 돌아왔다.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모두 맥에 디자인했다.
그것은 아름다운 타이포그래피를 갖춘 최초의 컴퓨터였다.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만약 나가 대학에서 그 한 교과목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맥은 다양한 서체나 비례 간격 글꼴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그리고 윈도우가 맥을 그대로 복제했기 때문에, 아마도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러한 기능이 없었을 것입니다.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만약 중퇴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서예 수업을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고, 개인용 컴퓨터에는 멋진 타이포그래피가 없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물론 대학에 있을 때는 앞으로 어떻게 그 점들을 이어갈지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하지만 10년 뒤에는 되돌아보면 매우 매우 명확했습니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다시 말하지만, 앞으로 보며 점들을 이어갈 수는 없습니다. 점들을 이어갈 수 있는 건 뒤로 돌아볼 때 뿐입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그러니 미래에서 어떻게든 점들이 연결될 것을 믿어야 합니다.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어떤 것이든 믿어야 합니다 - 직관, 운명, , 인연, 뭐든.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점들이 미래에서 어떻게든 연결될 것이라 믿는다면, 당신은 마음을 따르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Because believing that the dots will connect down the road will give you the confidence to follow your heart.
그것이 당신을 흔히 밟힌 길에서 벗어나게 해도, 그 차이가 모든 것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Even when it leads you off the well-worn path, and that will make all the difference.
 

제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손실에 관한 것입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나는 운이 좋았습니다. 내가 삶에서 좋아하는 일을 어릴 때부터 찾았습니다. I was lucky.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나와 Woz는 나가 20세일 때 내 부모님의 차고에서 애플을 시작했습니다.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우리는 열심히 일했고, 10년 동안 애플은 우리 둘만이 차고에서 시작했을 때의 모습에서 4000명이 넘는 직원을 두고 20억 달러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the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우리는 딱 맥킨토시와 같은 최고의 창작물을 전년에 발표했고, 나는 방금 30세가 되었습니다. We'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the Macintosh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그리고 나는 해고당했습니다.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어떻게 해고당할 수 있을까요?
And then I got fired.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 애플이 성장함에 따라 나는 매우 재능 있는 사람을 고용해서 회사를 함께 이끌어 나가기로 했고, 처음 1년 정도는 잘 되었습니다.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하지만 그 후로 우리의 미래 비전이 갈라지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는 갈등을 겪었습니다.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그 갈등이 발생하자, 우리 이사회는 그쪽을 편향했습니다.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그래서 30세에 나는 떠났습니다. 그리고 아주 공개적으로 떠났습니다.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나의 온 생애를 통틀어 중심이었던 것이 사라지고, 그것은 파괴적이었습니다.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그 후 몇 달 동안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몰랐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나는 이전 세대의 기업인들을 실망시킨 것 같았고 나에게 바톤이 넘어오는 동안 내가 그것을 놓쳤다고 생각했습니다.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나는 David PackardBob Noyce를 만나서 제가 이렇게 크게 실수한 것에 대해 사과를 시도했습니다.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나는 매우 공개적인 실패였고, 심지어는 계곡을 떠나려고 생각했습니다.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그러나 뭔가가 천천히 나에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아직 내가 하는 일을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I still loved what I did.
애플에서 벌어진 일들이 그 한 가지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나는 거절당했지만,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그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이 내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성공한 무게가 다시 초보자가 되어 모든 것에 대해 덜 확신하는 가벼움으로 바뀌었습니다.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그것은 나에게 내 삶 중 가장 창조적인 시기로 진입하는 자유를 주었습니다.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다음 5년 동안, 나는 NeXT라는 회사를 창업하고, 또 다른 회사인 Pixar를 시작했으며, 멋진 여성과 사랑에 빠져 그녀가 나의 아내가 될 예정이었습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d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Pixar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 스토리"를 만들어내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되었습니다.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놀라운 일이 벌어졌는데, 애플이 NeXT를 인수하고 나는 애플로 돌아가서, NeXT에서 개발한 기술이 애플의 현재 부흥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and I retur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Laurene과 나는 함께 훌륭한 가족을 이루고 있습니다.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내가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그것은 맛이 없는 약이었지만, 아마도 환자가 그걸 필요로 했던 것 같아요. It was awful-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가끔 삶은... 가끔은 삶이 벽돌로 머리를 때릴 수 있어. 그럴 때도 희망을 잃지 마세요. Sometime life.. Sometimes life's gonna hit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나는 내가 계속 나아갈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가 내가 하는 일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확신해.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너는 네가 사랑하는 것을 찾아야 해.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그건 네가 하는 일에 대해서도, 네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같이 참 맞아.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네 일은 네 삶의 큰 부분을 채우게 될 것이고, 진정으로 만족하려면 네가 훌륭한 일을 한다고 믿는 일을 하면 됩니다.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훌륭한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네가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이에요.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아보세요. 그리고 만족스럽지 않다면 타협하지 마세요.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And don't settle.
마음의 모든 문제와 마찬가지로, 네가 찾았을 때 알게 될 거예요.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그리고, 모든 훌륭한 관계와 같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좋아집니다.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그러니 계속 찾아보세요. 타협하지 마세요. So keep looking. Don't settle.
 

제 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17살 때 나는 이렇게 어떤 인용구를 읽었습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만약 매일을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분명 맞을 것이다."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그것은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그 이후로 지난 33년 동안, 나는 매 아침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만약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오늘 하려는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인가요?"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그리고 답이 연속으로 "아니오"였을 때, 나는 뭔가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내가 곧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삶에서 큰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내가 만난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왜냐하면 거의 모든 것 모든 외부 기대, 자부심, 창피나 실패에 대한 모든 두려움 이 모든 것은 죽음 앞에서 무의미하게 떨어지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입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죽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무언가를 잃을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함정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넌 이미 벗은 상태야. You are already naked.
너의 마음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어.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1년 전에 나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나는 아침 7:30에 스캔을 받았고, 그 결과 췌장에 종양이 명확히 나타났습니다.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나는 췌장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의사들은 이것이 거의 확실히 불치의 종류의 암이라고 말했고, 나는 3~6개월 이내에 살지 못할 것으로 예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내 의사는 집에 가서 일을 정리하라고 권유했는데, 이는 의사의 "죽음을 준비하라"는 코드였습니다.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the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이는 당신이 다음 10년 동안 말하게 될 모든 것을 몇 달 안에 자녀들에게 전하려고 노력하라는 의미입니다.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이는 가족에게 가능한 쉽게 되도록 모든 것을 철저히 마무리하라는 의미입니다.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이는 작별 인사를 해라는 의미입니다.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나는 그 진단과 하루 종일 함께 살았습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그 날 저녁, 나는 생검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내 목구멍으로 엔드로스코프를 넣어 내 위를 통과시키고 내 장으로 들어가, 췌장에 바늘을 꽂아 종양에서 몇 개의 세포를 얻었습니다.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나는 마취 상태였지만, 거기에 있던 내 아내는 세포를 현미경으로 확인했을 때 의사들이 울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수술로 치료 가능한 매우 희귀한 종양이었습니다.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나는 수술을 받았고 다행히도 지금은 건강합니다. I had the surgery and thankfully I'm fine now.
이것은 나에게 있어서 죽음과 직면한 가장 가까운 경험이었고, 나는 몇 더 많은 10년 동안은 이보다 더 가까워지지 않길 바랍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이를 경험한 후에 이제 죽음이 유용하지만 순전히 지적인 개념이었을 때보다 조금 더 확신 있게 당신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죽고 싶어하지 않아요.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No one wants to die. 
천국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조차도 그곳에 가기위해 죽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목적지입니다.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아무도 그것을 피해 나간 적이 없으며, 그것이 그렇게 되어야 하는 이유는 아마도 죽음이 인생의 가장 탁월한 발명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No one has ever escaped it,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그것은 인생의 변화 요소입니다. 옛 것을 청소하여 새로운 것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해줍니다. It'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현재, 새로운 것은 너야. Right now, the new is you.
하지만 언젠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너도 점차적으로 옛 것이 되고 청소될 것이다.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과장되게 들릴 수 있지만, 이 말은 사실입니다.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s quite true.
네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다른 사람들의 사상의 결과로 살아가는 도그마에 갇히지 마세요. Don't be trapped by dogma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다른 사람들의 의견 소음이 네 안의 소리를 묻지 않게 해주세요.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져라.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어떻게든 이미 당신이 진정으로 되고 싶어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그 외의 모든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어렸을 때 나의 세대를 위한 성경 중 하나인 놀라운 출판물인 "The Whole Earth Catalog"가 있었습니다.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이것은 Menlo Park 근처에서 Stewart Brand라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그는 시적인 손길로 이를 생동감 있게 만들었습니다.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이것은 개인용 컴퓨터와 데스크톱 퍼블리싱이 없던 196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모두 타자기, 가위, 그리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만들어졌습니다.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그것은 구글의 종이 형태 같은 것이었으며, Google이 나오기 35년 전에 나왔습니다.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이것은 이상주의적이었고, 멋진 도구와 훌륭한 아이디어로 넘쳤습니다.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스튜어트와 그의 팀은 여러 호의 "The Whole Earth Catalog"를 발행했고, 그것이 그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최종 호를 발행했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그것은 1970년대 중반이었고, 나는 당신의 나이였습니다.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그들의 최종 호의 뒷표지에는 일찍 나온 아침 시골 길의 사진이 있었는데, 당신이 모험심 넘치게 히치하이킹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길이었습니다.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그 아래에는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글씨가 있었습니다.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그것은 그들이 작별의 메시지로 남긴 것이었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나는 항상 나 자신을 위해 그렇게 기원했습니다.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그리고 이제, 당신이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해 졸업하면서, 나는 그것을 당신을 위해 기원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모두 감사합니다.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Stay Hungry. Stay Foolish.
Thank you all very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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